1970년대 가요계 평정한 ‘소녀가수’ 하춘화

7세의 젊은 나이에 앨범 발매 최연소 기록 기네스북에 게재 1971년 「물새 한 마리」발표 10년, 무명의 슬픔을 딛고 스타덤 「리사이틀」로 친숙한 이미지■ 음악감독 박혜은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디바’1971년 7월 지구레코드에서 하춘화의 신곡 「물새 한 마리」를 수록한 앨범을 발매했다. 이는 지구레코드에 전속된 고봉산의 첫 작곡집이다. 이 앨범의 히트곡은 제목 ‘물새 한 마리’와 1966년 발표 후 재녹음한 ‘아빠는 마도로스’.천부의 재능을 가진다”꼬마 가수”” 외로운 흐느끼며 홀로 선 차가운 호반에 물새 한마리 잡고 놀던 당신은 어디 가서 외롭게 서서 먼 저 하늘만 바라보고 울고 있는지, 떠난 당신은 떠난 당신은 안 오는데~”1971년에 정규 1집을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정식 가수가 된 하·중화학의 곡”물새 한마리”의 가사다.1961년 6세 때”효녀 심청(심천)으로 돌아가”라는 곡으로 가요계에 입문한 하·중화학은 한국 최초의 어린이 가수로 기록됐으나 당시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오랫동안 무명의 슬픔을 견뎌야 했다.한동안 극장의 쇼와 학교 생활을 병행하면서 데뷔 10년이 되도록 큰 히트 곡 없이 무대에 섰다.데뷔 5년째인 1966년에 발표한 고·봉 씨의 곡”아빠는 마도로스”이 약간의 반응을 얻기도 했다.극장쇼의 무대를 전전하던 하·중화학의 나이가 너무 너무 어려서 아버지의하·죠은오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고 한다.1955년 전남 영암(상 차림·용암)출생의하·중화학은 천부의 재능을 가진 작은 가수로서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1962년에는 아이 가수 하춘화(하·중화학)의 독점 앨범이 발매됐다.과거 가수 윤·나 중이 1951년에 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 윤·부산 길과 함께”천재 소녀 윤·나!”라는 간판에서 무대에 서는 것도 있었지만 앨범 발매는 하·중화학이 처음이었다.16살에서 발표한 “소녀 가수”하·중화학의 어린 목소리가 인상적인 “물새 한마리”은 절절한 분위기의 곡으로 전국에서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고 10년 전에 이름을 알렸다 작은 가수의 부활을 알렸다.”물새 한마리”의 흥행 하·중화학은 1971년 TBC방송 가요 대상으로 MBC10대 가수로 선정되면서 인기 정상의 가수가 됐다.그 후에도 TBC여성 가수상 4년 연속 수상, MBC10대 가수상 8년 연속 수상 등 최전성기를 맞이했다.1970년대를 평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남· 진 나·붕어, 송·장 식 등 수많은 명가수가 활동하던 시기에도 불구하고 가수의하·중화학은 1970년대를 통해서 톱의 인기를 누리며 20대에는 인기 가수 이상의 국민 가수로 사랑을 받았다.고·봉 씨와 듀엣으로 부른 ” 잘했다”과 “영암 아리랑””난생 처음””대관령 아리랑”등이 이때 부른 노래이다.2021년 66세로 데뷔 60주년의 가수, 하·중화학의 인기를 이끈 것은 “리사이틀”.포털에서 리사이틀을 검색하면”하·중화학 리사이틀”이 붙어 오게, 그 시대의 대중에 앨범도 앨범이지만”하·중화학 리사이틀”과 그 포스터는 친했다.1977년”두 사토 역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하·중화학에 대한 보고를 수시로 들었다고 한다.전 국민적 관심도 “하·중화학이 살았냐”에 집중했다.당시”여름 춘화 리사이틀”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1980년대 코미디계의 황제가 된 이주일도 이 사건 이후 하춘화 공연 전문 사회를 맡아 인기를 누렸다.1979년을 기점으로 결혼 준비와 학업에 의해서 하·중화학은 대중에게서 멀어졌다.이 시기, 1977년부터 꾸준히 성장하면서 정상에 대한 헤웅와 이·은하가 양대 여성 가수로서 전성기를 계속했다.1981년에 복귀한 하·중화학은 2년간의 공백에도 저력을 보였다.1982년 KBS”가요 톱 10″에서 1위 곡”사랑하는데”를 보내고, 전성기를 뒤잇는 인기를 얻었다.그 뒤 1985년 남북 예술인 교환 공연 당시 한국을 대표하며 가수로 평양 무대에 섰다.하·중화학은 1970년대와 1980년대까지 여러 면에서 한국을 대표한 가수이다.1989년에는 “나를 버린 남자”로서 선풍을 일으키면서 다시 각광을 받았다.1991년에는 총 공연 횟수 8천번을 기록하며 최다 개인 공연으로 기네스 북에 등록되었다.2002년 댄스 리듬의 트로트”연하의 남자”를 부르며 자신만의 댄스 실력을 과시했다.이로써 하·중화학은 춤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증명했다.2003년”남의 마음도 모르면서”, 2004년”당신 정도”, 2005년”왜 지금 왔어”, 2007년”사랑은 언제나 그렇다”, 2012년”피토우루마토우루”, 2014년”나이야 가”, 2019년”마산항에는 비가 온다”등, 착실하게 신곡을 발표하는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다.데뷔 60주년을 맞은 2021년에는 66세밖에 안 되는 연령에서 “전설”로서 하·중화학만의 무대를 선 보였다.박혜은 음악감독은 대중음악 작곡가,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DJ DOC, 쿨 등 수많은 가수의 곡 작업을 했고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KBS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등 OST 등을 만들었다.박혜은 음악감독은 대중음악 작곡가,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DJ DOC, 쿨 등 수많은 가수의 곡 작업을 했고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KBS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등 OST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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